영국 차 브랜드를 이야기할 때 포트넘 앤 메이슨(Fortnum & Mason)이나 트와이닝스(Twinings)는 자주 언급되지만, H.R. Higgins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런던의 차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오랫동안 꾸준한 평가를 받아온 전문 티·커피 상점입니다.
평소 운남성 고수차나 깊은 맛의 보이차를 탐구하며 차의 세계를 즐기는 저에게도, 이렇듯 기본에 충실하고 오랜 전통을 지킨 영국의 찻집은 늘 흥미로운 다가옵니다. 1942년 설립된 H.R. Higgins는 현재까지 가족 경영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규모는 크지 않지만 오랜 기간 품질 관리와 블렌딩 전통을 고집스럽게 유지해온 것이 특징입니다.
1942년 메이페어에서 시작된 작은 상점
H.R. Higgins는 해롤드 리스 히긴스(Harold Rees Higgins)가 1942년 런던에서 설립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이라는 쉽지 않은 시기에 문을 열었지만, 고품질 차와 커피를 선별해 판매하는 전문 상점으로 조금씩 명성을 쌓아갔습니다.
이후 가족이 사업을 이어받으며 오늘날까지 런던 메이페어의 듀크 스트리트(Duke Street)에 매장을 두고 있습니다. 대규모 체인점 확장보다는 전통적인 전문점 형태를 묵묵히 유지하는 곳입니다.
로열 워런티가 의미하는 것
이곳은 영국 왕실 관련 로열 워런티를 보유한 업체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로열 워런티는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일정 기간 동안 왕실에 상품이나 서비스를 공급한 업체에게 부여되는 인증입니다. 이것이 곧 "세계 최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품질과 공급 안정성 면에서 오랜 기간 꾸준한 신뢰를 받았다는 점을 증명합니다.
특히 H.R. Higgins처럼 규모가 크지 않은 가족 경영 기업이 이러한 지위를 유지해왔다는 점은 이 브랜드만의 강력한 무기입니다.
다른 영국 차 브랜드와의 차이점
포트넘 앤 메이슨이 럭셔리 식품 브랜드의 성격이 강하고, 트와이닝스가 전 세계 유통망을 가진 대중적인 브랜드라면, H.R. Higgins는 상대적으로 전통적인 차 전문점에 가깝습니다.
브랜드를 화려하게 홍보하기보다는 블렌딩과 원료 선별에 집중하며, 매장 역시 관광 명소보다는 지역 단골 고객과 차 애호가들이 찾는 조용한 분위기입니다.
이 때문에 영국 현지에서도 "유명한 브랜드"라기보다는 "차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는 상점"으로 소개되곤 합니다.
대표 블렌드: Duke Street Blend, 그리고 나만의 밀크티 레시피
H.R. Higgins를 대표하는 차 중 하나는 'Duke Street Blend'입니다. 주로 아쌈과 실론 계열 홍차를 블렌딩해 만든 제품으로, 지나치게 강하거나 자극적이지 않은 균형감 있는 맛이 특징입니다. 아침 식사와 함께 마시기에도 무리가 없고, 우유를 곁들여 마시는 영국식 스타일에도 아주 잘 어울립니다.
저는 이 듀크 스트리트 블렌드를 활용해 집에서 종종 시나몬 밀크티를 끓여 마시곤 하는데요. 방법은 생각보다 아주 간단합니다.
나만의 시나몬 밀크티 끓이는 법
차와 시나몬 우리기: 뜨거운 물에 듀크 스트리트 블렌드 찻잎과 시나몬 스틱을 함께 넣고 진하게 우려냅니다. 시나몬 스틱은 단단해서 열이 가해져야 향이 잘 피어오르기 때문에 반드시 찻잎과 함께 처음부터 넣어주어야 합니다.
우유 더하기: 찻잎과 시나몬의 향이 충분히 우러나면 우유를 붓고, 끓어 넘치지 않을 정도로만 따뜻하게 데워줍니다.
단맛 조절하기: 불을 끄고 찻잎과 시나몬 스틱을 걸러낸 뒤, 마지막에 설탕을 넣어 원하는 만큼 단맛을 맞춥니다.
이렇게 끓여내면, 시나몬 향이 기분 좋고 부드럽게 피어오르는 매력적인 한 잔이 완성됩니다. 일반적인 밀크티처럼 마냥 무겁고 달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입안에서 아주 깔끔하게 떨어지는 맛이 일품입니다. 특히 우유가 들어간 차를 마시고 난 뒤에 혀에 남기 쉬운 특유의 텁텁한 뒷맛이 전혀 없어서, 마지막 한 모금까지 아주 기분 좋게 즐길 수 있습니다.
메이페어라는 위치가 갖는 의미
메이페어는 런던에서도 오래전부터 고급 상업 지구로 알려진 지역입니다.
H.R. Higgins가 이 지역에서 수십 년 동안 같은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은 단순한 주소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관광객을 위한 기념품 판매점이 아니라 지역 고객층과 차 애호가들을 중심으로 사업을 이어왔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많은 방문객들은 매장의 화려함보다는 전통적인 분위기와 전문적인 상담을 인상적인 요소로 꼽습니다.
마무리
H.R. Higgins는 대형 마트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가장 유명한 차 브랜드는 아닙니다. 그러나 8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원료 선별, 블렌딩, 그리고 꾸준한 품질 관리에 집중해 온 뚝심 있는 상점입니다.
평소 깊은 향을 가진 동양의 차를 즐기시는 분들이라도, 영국 차 문화의 정수와 깔끔한 밀크티의 매력을 경험해보고 싶다면 한 번쯤 살펴볼 만한 훌륭한 선택지입니다.
0 댓글